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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여름 풍경이 사랑스러운 윤가은 감독의 데뷔작이자 수작.
3명의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뻔할지도 모른다. ‘왕따’라는 무겁지만 낯설지 않은 소재로 만든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그럼에도 이야기를 진실되고 흥미로우며 매력적으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현실과 환상, 그 어디쯤에 있는 영화다. 선(최수인)을 중심으로 지아(설혜인)와 보라(이서연)가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억지스럽고 자극적인 괴롭힘은 없고, 질투와 미움 등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그냥 꺼내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가 담고 있는 분위기는 따뜻하다. 계절적 배경은 여름으로, 영화는 어린 시절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한 듯, 기억 속 가장 아름다운 여름을 자연스럽게 옮겨놓은 듯하다. 봉숭아 꽃잎을 빻아 올린 작은 손톱, 잠들지 못한 푸르스름한 새벽(초등학교 4학년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친구들로 인한 고민으로 잠들지 못한 경험, 분명 한번쯤 있을 것이다), 실을 엮어 만든 팔찌, 쉬는 시간의 교내 수돗가 등.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빛을 떠올려보라. [우리들]은 (안타까우면서도) 그런 기분 좋은 영화다.
[우리들]은 나아가 10대를 거쳤기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만이 아닌, 선의 가족을 통해 모든 ‘관계 맺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라는 단어가 어떠한 세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듯 단지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아버지(선의 할아버지)의 병실에서 우는 선의 아버지는 관계를 매듭 짓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우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는 시작부터 진득하게 선의 얼굴과 시선을 쫓는다. 선을 연기한 최수인의 연기는 놀랍다. 윤가은 감독이 발굴한 신인배우로, [우리들]이 첫 작품이다. 가위바위보로 편 가르기를 할 때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는 초조한 표정이나 잠들지 못한 채 고민에 빠진 눈빛 등, 그냥 그 자체로 선이었다. 감독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길 수 있도록 자연광을 활용하고 두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동시에 촬영했다. 고무적인 것은 이 영화가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이다. 전작인 단편 영화 [손님](2011)과 [콩나물](2013)이 그러했듯, 윤가은 감독은 유년기를 그리는 데 탁월하고, [우리들]은 그 탁월함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그동안 새로운 한국 감독과 배우에 목말랐다면, [우리들]이 그 갈증을 충분히 달래줄 것이다.